국어시험 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아버지의 집’을 떠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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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10-05 02:28본문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1999)은 영화 <밀애>(감독 변영주)로도 제작된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다. 이 소설은 통속성의 혐의에 시달렸다. 서른세 살의 주부 미흔은 불륜의 사랑에 빠지고, 아들마저 두고 집을 떠나기 때문이다. 대중소설은 여성 독자들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로 로맨스와 불륜은 공허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흔한 소재다. 그런데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유독 특별한데, 미흔은 불륜 사실이 발각돼 남편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지만, 여느 주인공들처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미흔은 욕망이라는 추에 매달려 고속 회전함으로써 ‘정상’이라고 부르는 세상 밖으로 애써 튕겨 나가고자 한다.
미흔이 집을 떠난 것은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한 상처와 실망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부분적으로 멜로드라마 형식을 취하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낯선 방문객이 찾아오고, 미흔은 남편 효경에게 내연녀가 있음을 알게 된다. 미흔은 스물한 살에 효경을 만나 “평생 동안 하나의 생을 온통 함께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이라고 여겼기에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당한 듯한 충격으로 극심한 두통과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린다. 남편과 함께 ‘나비 마을’이라는 시골로 이주 후 미흔은 자신의 생애에서 특별한 날들을 겪게 된다. 사설 우체국 국장이자 기혼남인 ‘규’의 제안으로 사랑에 빠지면 만남이 종결되는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 위한 제의적 성격이 짙다.
1990년대 한국 여성문학은 ‘제2물결’의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가 연상될 만큼 사랑, 섹슈얼리티, 가족 등 비밀스럽게 은폐된 ‘사적 영역’을 공론장으로 끌어 올렸다. ‘신세대 연애관’ 또는 ‘신세대 결혼관’이라는 이름으로 성과 사랑을 다시 쓰고자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듯이 여성 작가들은 사생활에 소설이라는 광학렌즈를 들이밀었다. 가족제도의 허위를 까발리고, 성과 사랑에 관한 불온한 상상력을 펼쳐 보였다. ‘사랑의 탈낭만화’로 명명되는 이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 은희경이 더 이상 사랑의 환상에 속지 않는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사랑 없는 세계를 자유롭게 떠돌겠다고 선언한다면, 전경린은 낭만적 사랑의 불일치와 역전의 힘에 주목해 섹슈얼리티의 모험을 강행한다.
1990년대에 낭만적 사랑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낭만적 사랑이 왜 문제인가? 대중화된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들은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신분 차이에도 한눈에 반하고, 여성이 결혼으로 신분 이동의 기회를 획득한다는 상투적 문법을 공유한다. 재클린 살스비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은 경제 결혼의 추악함을 은폐하기 위해 화려한 베일을 필요로 한다”, “로맨스는 박탈당한 자들의 반사실적 사고”라고 풍자한다. 로맨스 서사가 근대적 사회계약으로 남성은 권리를 가진 시민이 되지만, 여성은 그런 남자의 구원을 받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낭만적 사랑’은 여성에게 보수적인 품행지침서로 기능한다. 낭만적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 가족(결혼과 재생산), 섹슈얼리티를 일치시킴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순결의 의무를 부여하는 듯하지만, 언제나 억눌리는 것은 여성의 욕망이다. 그래서 슐라미스 화이어스톤은 성차별을 은폐하고 공고히 하는 사랑의 심장을 겨누지 못하는 여성해방 이론은 실패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경린은 낭만적 사랑에서 탈영토화의 가능성을 찾는다. 낭만적 사랑은 봉건적 공동체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화가 진행돼 남성과 여성이 연애와 결혼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자율성을 행사하게 된 시기에 발생했다. 낭만적 사랑은 적어도 이론적으로 평등한 개인이 열정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자발적으로 성애적 관계를 실현함으로써 계급 질서나 가족 제도에 도전하는 급진 문화였다. 바로 이 점이 여성들이 낭만적 사랑에 열광했던 또 다른 이유였다. 가문 중심의 혼인제도 속에서 딸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교환되는 ‘아버지’의 재산 목록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트로피 걸로 남고 싶지 않은 여성들은 에로스의 날개를 이용해 아버지의 영토 바깥으로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전경린은 특유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풀꽃들이 피어난 숲과 해변의 모텔 등 비현실적 풍경을 배경으로 정사 장면을 미학화한다. 마치 ‘신’을 만나 진정한 자아정체성을 창조하기 위해 일상의 언어를 버리고 상징계를 이탈하는 광신도처럼 미흔은 열정의 심연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수치심의 굴레와도 같았던 자신의 성적 육체에서 비로소 희열의 한 조각을 찾아낸다. 미흔은 아주 오래전에 여성이라는 성차화된 몸으로부터 내상을 입었다. 열세 살의 미흔은 크리스마스 날에 하숙생인 치과의사와 외출했다가 우연히 만난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더러워하는 것 같은 시선을 읽었다. 이후 미흔은 지독한 결벽증에 시달리고 오염에 대한 공포인 양 후각 기관을 거의 닫아버린다.
여성의 수치심이라는 명명이 가능할 만큼 수치심은 여성의 자기 존재에 깊이 자리 잡은 감각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정체성과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의 권력 관계를 구성하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감정인 것이다. 이 소설에는 폭력의 피해자지만, 수치심의 멍에를 짊어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휴게소 여자 ‘은연’은 열일곱 살에 강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절에 들어가지만, 그 사실을 안 스님에게 쫓겨난다. 갈 곳이 없는 은연은 다방 여자가 되고, 자신을 산 손님과 결혼해 지독한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 은연은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수치의 낙인을 안고 정상 사회 바깥으로 내밀린다. 다른 한편으로 부희는 은연과 달리 강요된 수치심에 저항하며 쾌락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녀다. 열아홉의 부희는 연인이 떠난 후 아버지에 이끌려 만삭의 몸으로 공사장 인부와 결혼하지만, 연인과 우연히 재회해 다시 사랑에 빠지고 간부(姦夫)와 함께 시아버지를 살해한다. 부희는 법정에서 나는 사랑을 했을 뿐, 결코 부정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이처럼 전경린 소설이 보여준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통과제의는 한국 여성의 사회적·심리적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재현이라는 점에서 감상적인 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전경린의 소설은 초남성적 아버지들 밑에서 코르셋이 입혀진 채 자란 규범적인 여자아이들이 사랑을 하며 지독한 상처를 입고, 불온한 욕망의 축제를 통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시대의 텍스트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불완전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계급이나 민족문제 같은 거대 서사에 가려져 있던 가족과 사생활 등 친밀성 영역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의제가 됐다. 광장의 민주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적 영역의 민주화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여성해방의 물결을 경험했던 것을 염두에 두자면, 한국에서 페미니즘 물결은 상당히 뒤늦었던 것이다.
▼ 김은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시리즈] 은희경 ‘새의 선물’…우주선의 세계에 여성은 없다는 냉정한 자각
김민석 국무총리는 3일 “위헌·위법한 내란을 맞아 국민은 법과 질서를 충실히 지키며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며 “우리 국민이 보여준 인본·상생·평화의 가치가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라고 밝혔다.
김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357주년 개천절 경축식에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따스한 봄을 맞이하듯 국민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주권정부를 출범시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총리는 “국민주권정부는 홍익인간 정신을 토대로 삼아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채택했다”며 “우리 시대의 과제는 국정운영 패러다임을 국민 중심으로 전환하고 국정과제의 이행 기준을 국민에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국 개천 정신에서 비롯된 우리의 빛은 국내를 넘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며 “전 세계가 기후위기·인구위기·지정학적 위기·AI 대전환 등 대혼란을 겪는 시대에 홍익인간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그러면서 ‘통합·경청’과 ‘공정·신뢰’를 약속했다. 김 총리는 “국민 목소리를 널리 듣고 다양한 생각을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펼 것”이라며 “국민 한 분 한 분 의견을 꾸준히 경청하며 세대와 지역 계층을 넘는 화합의 공동체를 이뤄가겠다”고 했다. 그는 또 “건강한 사회 발전의 근본은 공정”이라며 “불공정과 특권으로 소수만이 특혜 누리는 시대 끝나야 한다”고 했다.
김 총리는 끝으로 ‘실용·성과’를 강조하며 “인공지능·반도체·바이오·우주산업 등 전략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과감한 규제 혁신으로 국민의 창의성과 도전을 뒷받침하겠다”며 “실용외교를 바탕으로 국익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인류 공동의 번영과 평화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고 고용노동부의 여성 고용 정책 일부를 이관하는 내용도 담겼다. 보도에 따르면, 성평등 관점에서 정부 전 부처 정책을 총괄·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실·국 개편이 담긴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이번주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곧 출범할 성평등가족부는 절반의 의미만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성평등 정책이 특정 부처에 국한돼 추진된다면 매우 제한된 범위에 그칠 수 있고, 그러면 정책 성과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별 임금 격차는 이를 전담해온 고용노동부에 가장 큰 책임과 정책 권한이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성별 분리를 초래하고 지속시켜온 교육제도나 산업별 특성, 기업문화와 관행, 출산과 보육 지원 등 여러 구조적 요인들이 얽혀 형성된 산물이다.
따라서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평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물론, 교육과 산업·기업·보육 등의 정책을 전담하는 부처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평등가족부가 정부 정책 전반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갖는 것은 몸집 늘리기가 아니라 업무 수행의 핵심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빠졌지만, 앞으로 수정해가야 할 부분이다. 이 기능이 충족될 때만 명실공히 ‘성평등가족부’의 위상을 가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성평등 상황을 개선해갈 수 있을 것이다.
[플랫]내일부터 ‘성평등가족부’… 확대된 여가부 ‘고용평등’ 추진한다
이번 개정안에서 논의할 만한 것이 있다면, 고용노동부의 여성 고용 정책 일부를 이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A)와 고용평등공시제가 주요 대상이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는 공공기관, 지방공사와 지방공단,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과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고용률과 여성 관리자율을 동종 산업 유사 규모 기업의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표를 갖는다. 70% 수준에 미달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여성 고용 개선을 위한 시행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행 실적을 평가하며 미이행 기업에 대해서는 명단을 공표한다.
이 제도는 그동안 기업에서 여성 고용을 늘리고 관리직 진출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 또한 지적돼왔다. 평가의 정확성과 신뢰성은 물론, 이행 강제력과 미이행 기업에 대한 구속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라서는 ‘규제 완화’라는 정책 기조 아래 기업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백안시되고 자율적인 노력으로 맡겨지는 등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됐다.
고용평등공시제는 현재 성별근로공시제라는 이름으로 고용노동부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기업의 채용, 근로, 승진, 퇴직 등 고용 과정의 성비를 공개해 기업 스스로 고용상 성차별 현황을 인지하고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사회적 반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용평등공시제, 정확히 표현하면, 성평등고용공시제는 기업의 현황을 ‘공시’하는 데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성별 임금 격차는 산업과 기업, 직종, 고용 형태, 근속연수 등 다양한 요인들이 중첩되어 발생하며 각 기업의 사정에 따라 원인과 구조도 다르다. 그러므로 기업이 성별 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해 각자의 개선 방안을 스스로 찾아 시행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공시 기업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제대로 시행하면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성평등가족부는 성별 임금 격차 해소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고용노동부와 함께 전담하는 부서가 될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과 다행스러운 점 모두 눈에 띈다. 걱정스러운 점은 인력과 시스템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고용노동부에서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 제도들을 힘도 조직도 작은 성평등가족부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주도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부처의 수장이 이 문제에 대해 ‘아마도’ 높은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원민경 장관은 물론, 김영훈 장관 역시 여성 고용 정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진 것으로 안다. 두 부처 장관들의 아름다운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20여년 동안 30%대를 벗어나지 못해온 성별 임금 격차의 높은 벽을 속 시원히 깨부수기 바란다. 이를 위한 대통령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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